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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투스테이지/방송 인터뷰 기사

무대디자이너 임일진 감독 "무대미술가, 아티스트면서 리얼리스트가 돼야"

공연을 소개하고 공연을 이야기하고 공연을 만나보는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문화뉴스기사전문]

클래식,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무대디자이너 임일진과의 인터뷰.


29회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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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ㄴ 현재 송도에 있는 국립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무대미술, 무대의상, 현대공연예술론, 무대감독 등의 프로덕션 제작 및 이론 관련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제작실무 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영역도 가르친다.

인천대는 올해인 2016년도부터 재직 중이며, 청주대학교 연극학과에서 2011년부터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30년 이상 된 청주대 연극학과의 훌륭한 전통을 이제 6년째인 인천대 공연예술학과의 장점과 접목시키는데 열중하고 있다.


Q. 어떻게 하다 무대디자이너가 되었나?
ㄴ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공업디자인 분야는 지금도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 단순히 싫어서 전공을 바꾼 것이 아니라, 순수예술로서 사회에 내 생각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분야로서 무대미술을 선택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학부시절 학교 공부 외에 사회과학과 철학, 미학 등의 동아리 활동과 많은 학습을 통해 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고민이 안정된 디자이너의 삶보다는 그 당시 전혀 새로운 분야였던 무대미술을 선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학 졸업 후 무대미술로 대학원을 찾아봤지만 그나마 있었던 대학원의 전공이 없어진 후라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없어서 공부 잘하면 학비가 들지 않는 이탈리아의 국립대학으로 떠나게 되었다. 연극의 원류가 이태리에 있다는 사실도 나에겐 매력이었다.


Q. 학창시절부터 공연에 관심이 많았나?
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공연을 한 번밖에 본적이 없다. 난 보통사람들처럼 공연이 좋아서, 또는 극회활동을 통해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내 생각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로 무대미술을 생각한 것이다. 무대미술자체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덤벼든 것이다. 대학 때 걸개그림도 많이 그렸고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였다. 무대미술을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미디어로 생각했던 것 같다.


Q. 한국에서 활동을 얘기해 달라. 본인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ㄴ 유학 당시 한국 공연계에 전혀 아는 사람과 단체가 없다가 이탈리아에 있는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사람의 소개로 국립오페라단에서 무대미술가로 데뷔를 한 뒤, 이후 이탈리아와 한국을 계속 오가며 창작 횟수를 늘려오던 중 국립오페라단 미술감독으로 정식 발탁되며 한국을 떠난 지 12년 만에 귀국을 하였다.

처음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도니젯띠 오페라 '일 깜빠넬로'라는 작품으로 한국 데뷔한 뒤 2년 만에 결정된 일이었다. 데뷔이후 한국활동이 잦아들다 보니 오히려 완전귀국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 후 세계적인 연출가, 지휘자 등과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많은 오페라, 발레 등의 클래식 공연에 전념했다.

2005년 귀국 후 국립오페라단 미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공연 외에 연극, 무용, 창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연출가와 협업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표작보다는 기억에 남는 작품을 몇 개 꼽는다면

* 이탈리아 연출가 울리쎄 산띠끼-국립오페라단 제작 오페라 '투란도트'
* 프랑스 연출가 제롬 사바리-국립오페라단 제작-오페라 '카르멘'
* 양정웅 연출-국립오페라단 제작 오페라 '천생연분' '보이첵'
* 문훈숙 안무-유니버설 발레단 발레 '춘향'
* 양정웅 연출-LG아트센터 제작 연극 '페르귄트'
서울예술의전당 제작 ? 연극 '페리클레스'
* 한태숙 연출-국립극장 제작 창극 '단테의 신곡' 등이 있다.

 

 

Q. 무대디자인을 할 때 연출 및 다른 스태프와 소통을 하는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ㄴ 무엇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자세 위에서 모두는 평등한 한 사람의 직업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누구의 아이디어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아이디어가 공연에 직접적인 기능을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공연에서 각자의 맡긴 일과 책임이 다를 뿐 업무 경중이 없다는 수평적 자세에서 언제나 가능한 방향으로 긍정적인 소통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에선 서로 이런 인식들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Q. 창작할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주로 얻는지
ㄴ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믿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순간 떠오르는 것보다는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연출의도와 콘셉트, 그리고 대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아이디어는 순간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쥐어짜서 나올 때까지 계속 고민한다. 모든 것은 대본에 있고, 언제나 문제는 그것에 대한 나의 입장과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에 많이 보고, 읽고, 느끼려고 노력한다.

 

Q. 무대장치는 제작예산과 가장 크게 맞닿아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도한 바를 포기하거나 그로인한 스트레스 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ㄴ 물론 무대뿐만 아니라 제작 전 분야에서는 예산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말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현실에 쓰일 수 있는 아이디어와 실현가능성이다. 스텝들과의 소통과 관계가 공연의 일부인 것처럼 예산과의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조건 위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제작을 가능케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Q. 한국에서 무대디자이너로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많은 공연 창작 예술가들이 창작 작업만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따른 해결책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ㄴ 어떤 나라도 공연예술가(전업작가)는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전업의 경우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점점 작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심해지는 편이다.

요즘처럼 돈벌이 한류만을 생각하는 작품만 대접해주다 보면 클래식이나 전통공연들은 더더욱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작품적인 다양성이 상실된다. 그래서 공연 창작자들의 사회복지, 저작권, 근무환경 개선 등 인식의 전환보다는 공연제작 시스템의 실천적 변화와 개혁이 절실하다.

기본적인 작업환경이 보장되고 정정당당한 예술적 경쟁이 가능하다면, 생활을 유지하고, 못하고는 철저하게 예술가 개인의 능력문제라고 생각한다.


Q. 극단을 차린 걸로 안다. 어떤 생각에서였는가?
ㄴ 친동생이 얼마 전 독일에서 긴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연출가로서 활동하려던 참에 제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포스트드라마를 해보려고 이 기회에 하나 차렸다.

포스트드라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워낙 생소한 현대연극분야여서 연극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흥행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선뜻 제작하기 힘들다. 그래서 함께 작업할 연출가나 극단이 마땅히 없었다. 이번 기회에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연극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Q. 포스트 드라마가 무엇인가?
ㄴ 포스트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극적인 관점은 '재현'이 아닌 '현존', '경험'을 나누는 것이 아닌 '공유', '결과'보다는 '과정', '취지'보다는 '선언', '정보'보다는 '에너지'다. 특히 브레히트의 작품이 포스트드라마적인 성격이다. 이번 작품은 브레히트의 '대서양 비행횡단' 과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포스트가 기존의 드라마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공연환경에선 이런 작품 하면 무조건 망한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다양한 예술을 제공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점점 이런 연극이 활발해지면 다양한 작품들이 공존하는 계기가 되고 종래에는 어느 정도의 흥행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무대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ㄴ 무대디자이너는 영역이 넓고 알아야 하는 것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많은 친구는 무엇을 디자인하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세부적인 것을 결정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 것 같다. 무엇을(무슨) 디자인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의 작업'을 하고 싶은가'이다.

'무엇을 디자인'하는가 보다는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주목하면서 본인만의 가치와 세계관을 만들어 가는데 힘썼으면 좋겠다.

이렇듯 건강하고 다양한 가치위에서 무대미술가는 아티스트이면서 동시에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