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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투스테이지/방송 인터뷰 기사

공연칼럼니스트 김일송에게 듣는 공연계 이야기

공연전문 잡지인 씬플레이빌 창간(2003)부터 2016년까지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공연 전문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일송 칼럼리스트를 만났다. 

 

 

                                            ▲ 플스 86회 게스트, 김일송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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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연칼럼리스트가 기자, 평론가랑 다른 점은 무엇인가?
ㄴ 기자로 재직 중일 때 다른 매체에 기고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종종 칼럼리스트라는 타이틀로 글을 올리게 됐다. 칼럼리스트는 기자와 평론가의 중간 점에 있다고 생각하며 누구에게나 붙일 수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와 평론가에 대해 먼저 말하면 기자는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 평론가는 협회에 등록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반면 칼럼니스트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를 의미하지만, 요즘은 영역 간의 경계가 약해지고 있다.
게다가 일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누구나 기자, 평론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것을 지향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Q. 기고하는 지면과 주로 관람하는 장르는 무엇인지
ㄴ 고정으로 기고하는 매체는 일간지와 패션지 하나씩이고 그 외에는 부정기적으로 여러 지면에서 의뢰받는다. 주로 관람하는 장르는 연극과 무용이며 가끔씩 뮤지컬을 보지만 주로 연극을 많이 본다.


Q. 소극장 공연을 많이 다루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소극장 공연만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ㄴ 대극장은 관객이 많다. 하루에 천 명의 관객이 오게 하려면 작품이 대중적이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소 ‘보수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보수적’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을 띤 공연이 된다는 말이다. 반면 소극장은 객석 수가 적으니 약간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이라는 말을 빌어서 정리하자면 나는 문화와 예술이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보편성을 가진다는 뜻이고 예술은 특별하고 개성이 강한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집단이나 지역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관습이 굳어진 것이 문화라면 예술은 그 반대의 속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낱말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극장공연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화’라는 말에 가깝다면 소극장공연을 ‘예술’이라는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극장은 일반적으로 다루지 않는 소재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극장 공연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하지만 부족한 가운데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 더 재밌다. 배우의 몸만으로 장면을 만들어낼 때 더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소극장공연만의 미학이 있다.

그리고 고 손준현 기자님께서 생전에 소극장 공연을 사랑해서 자주 소개하셨고, 그것이 나를 비롯한 후배 문화부 기자, 그리고 예술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소극장 공연에 관심을 끌게 됐다. 그것이 나를 비롯한 후배 문화부 기자, 그리고 예술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소극장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에 어떤 시상식장에서 수상자의 소감을 들었는데 손준현 기자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보고 공연계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이 형식적인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다.


▲ 김일송 공연칼럼리스트


Q. 지난번 교수 갑질 사건에 대한 칼럼을 보았다. 취재기사 같기도 했는데 그 글을 쓰면서 느꼈던 부분이 있는지
ㄴ 최근 일어난 교수 갑질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수의 작품을 비평했다고 해서 강사가 강의를 박탈당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제자 작품 탈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사자였던 교수가 동일 인물이다.
사실 칼럼리스트가 취재형태를 띤 칼럼을 쓰는 일이 흔하진 않다. 하지만 이번 건은 양쪽 의견을 모두 듣고, 연극계 여러분들을 통해 실상을 파악하려 했다.

중간에서 기계적 균형을 취하는 것도 무리였고 글 쓰는 것도 부담이 됐다. 실제 현장의 취재기자들은 굉장히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의 사실 이 어부를 확인해야 했고 이 사건이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단 공연계의 나쁜 관행이라고 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교수나 연출가들의 사례를 들었을 때 지난번 불거진 갑질 사건이 공연계의 일반적인 일이란 걸 알았을 때 힘이 빠졌다. 심지어 내가 좋게 봤던 작품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Q. 공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것 같은데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ㄴ 내가 봤을 때 예술계의 사제 관계가 과거 도제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공연예술계는 교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대학 졸업 후에도 교수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속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앞날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Q. 그 칼럼에서 마주 할 일 없는 권력과 싸우는 것보다 매일 마주하는 스승, 선배와 싸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던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ㄴ 어려운 문제다. 나는 이번에 교수 갑질 사건을 보면서 공관병에 대한 육군 대장의 갑질 사건을 떠올렸다. 사실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부릴 때 채찍과 당근을 둘 다 가지고 조종한다. 을이 피해를 보고 말 못 하는 것은 갑이 가진 당근에 길들여진 때문도 있다. 인간이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어제까지 나에게 웃으면서 불합리한 일을 강요했던 사람에게 오늘 정색하고 맞선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나조차도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뭐라고 조언하기 어렵다. 불합리한 사태에 대해 직접 나서서 싸우는 사람이 있고, 그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 중재하는 사람이 다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지지자나 중재자 역할을 할 때가 더 나은 것 같다.


Q. 그 점에 대해서 칼럼리스트가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ㄴ 방외자로 남아있는 게 그나마 내 역할을 수행하기 편한 것 같다. 그래야 어떤 사건에 대해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 내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의 적극성이라 생각한다.


▲ 김일송 공연칼럼리스트


Q. 어떻게 하면 공연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관련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ㄴ눈높이를 높이려면 공연을 많이 보는 수밖에 없다. 대학원 시절 과제로 공연리뷰를 작성하는 일이 있었다. 교수님께선 자신의 생각을 넣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때 나는 공연에 대한 조금이나마 내 생각을 집어넣고 싶었다. 그 말에 공감 가지만 지금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하지만 최대한 내 주관을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글을 써서 공연현장을 본 것처럼만 독자들이 느끼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내가 못 보고 놓친 공연이 어땠는지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때 나에게 가장 도움 되는 리뷰는 감동을 전하는 리뷰가 아니라 그 공연을 세세하게 설명하듯이 쓴 리뷰다. 그 글을 일반인 블로거가 썼더라도 말이다.

두 번째 방법론은 자신의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다. 예전에 김명화 평론가께서 나보고 공연평론을 해보라고 조언하셨다. 평론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니 자신의 주관을 그대로 쓰면 된다는 이유였다. 누구나 자신만의 문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서 쓰는 것도 나름의 문체다. 앞선 두 가지 측면을 조절하여 어떻게든 객관성을 유지하되 기본적으로 나만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Q. 공연기획자 지망생들에게 강의도 하는데 실제 그들이 기대하는 공연계와 현실의 차이점이 느껴지는가?
ㄴ 실제로 만나 보면 공연계에 대단한 기대를 하고 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이 폐허 위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만 만났던 것 같다.
그들에게 조언했던 말 중의 하나는 공연기획자는 문화평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자가 어떤 작품을 결정할 때 우리 사회의 문제나 예술생태환경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만드는 행위가 자기만족이 아닌 대중과 소통하고 관객들의 일상에 작은 변화라도 주고자 하는 의도라면 자신의 삶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