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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고시원의 햄릿공주]존엄성의 성찰, 연극 ‘고시원의 햄릿 공주’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2011년 1월, 대한민국은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배가 고파 밥과 김치를 얻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아사(餓死)인가 병사(病死)인가의 논란을 떠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자본의 독식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었다는 것과 자존감 상실에 기인한 선택적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서른 두 살의 청년이었고 전도유망한 예술인이었다.
청년, 예술인, 모두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한없이 빛나야 할 그들이며 사회를 선도해야 할 고결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말 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삼포 세대, 블랙리스트란 쓰라리고 오욕스러운 것들뿐이다.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워야 할 청년 예술인은 이 시대 유래를 찾기 어려운 가장 취약하며 빈곤한 계층이 돼버렸다.
승자 독식의 불안정한 시스템의 사회는 소수만을 위해 작동되고 있으며 취약한 이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메이저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최악의 상황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연극 '고시원의 햄릿 공주']

 사진전 '고시텔 프로젝트' 중 한 장면

 

이 연극은 고시원에 기거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다루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 작가의 빈곤하며 처절한 죽음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또한,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 쓰라린 현실 속에서 철저히 배제되며 사회적 약자로 전락해 버린 청년 예술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에 17,000여 개의 고시원이 있다고 한다.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많은 대학생과 직장인들은 겨우 발 뻗을 공간만 있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방 출신 한 청년은 10개월 동안 고시텔에서 자신과 옆방, 복도, 옥상 등의 빈곤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국회의원과 대선 후보들에게 현실을 알리는 보도 같은 사진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가 담은 것은 고시텔이었지만 도시 안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가는 사회적 약자의 씁쓸한 현실의 악몽이었다.
연극 '고시원의 햄릿 공주' 포스터 속 주인공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고시텔프로젝트’라 불리던 그 사진전 속 모습처럼 고시원의 작은 방에 웅크리며 누워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어쩌면 죽음을 선택한 최후의 모습마저 연상시키기도 해 아름다웠던 모습은 안타까움으로 한순간에 변질된다.

 

시놉시스는 이렇다.
청년 자살자가 급격히 늘어 더는 영혼을 수용하지 못하는 저승의 염라대왕은 당분간 청년들의 자살을 방지하도록 저승사자에게 명령한다. 그들은 서울의 한 고시촌을 담당한다. 그곳에서 희곡작가로 활동하는 청년 정수정의 죽음을 막으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그런데 왜 햄릿 공주인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정체성의 성찰을 다루고 있다.
분석서에 따르면 관계 모순 속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상실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며,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의 유령으로부터 촉발된 삶과 죽음의 성찰은 단순한 이분법을 뛰어넘어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부터 텅 비어 있는 무상한 것(空)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한다.
연극 속 시나리오 작가인 주인공은 '햄릿'을 현대화하려 한다. 아마도 그는 그 희곡의 현대화 과정을 통해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깨닫게 되며, 그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결정은 이미 한없이 추락해 버린 자신의 자존감 상실을 통해 생사의 고찰을 넘어서 무상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의 끈]
자본주의를 모든 가치의 이상향으로 만들어 청년과 예술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꿈을 담보로 자본의 노예를 만드는 비열한 사회적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과연 그들을 어떻게 보듬어 줄 것인가?
청년과 예술인의 문제는 개인을 넘어서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선진국은 다음과 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엥떼르미땅이란 제도를 도입, 공연․영상 분야의 비정규직 예술인을 위한 실업급여제도를 채택, 운영하고 있고 예술가들의 작업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반영해 수급자격, 기간, 금액 등의 기준을 낮춘 특별실업보험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 예술인 사회보험제도(KSK)를 도입, 국가와 저작권 사용자가 예술인을 위해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여 연금, 의료보험 및 요양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특히 신진 예술가들에 대해 특별한 제한이 없이 3년간 예술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
얼마 전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두한 이슈는 '기본소득'이었다.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주요 목표였지만 저성장의 시대는 불가능했으며 시장의 효율성을 통해 모든 이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겠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은 모두 허위였음으로 드러났다.
기본소득은 경제 우선의 논리에서 벗어나 인간적, 시민적 삶의 기초를 우선한다.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적절한 삶을 보장한 보편적 복지이고, 단순히 재분배정책이 아닌 경제 우선의 사회적 패러다임을 삶의 질로 이동하게 하는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혁신적인 정책이다. 이미 예술계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별적 복지의 수많은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인 것이다.
적용하려면 사회인식 변화와 함께 한참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대통령 선거가 열리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생활고로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를 회고하며 예술인을 위한 실질적인 복지 제도를 강조했었다.
이제 대통령이 된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지 알 수는 없지만, 6년 전 타계한 시나리오 작가까지 언급하며 예술인 복지를 강조한 이상 절실한 희망의 끈은 아직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고 위안 삼으며 씁쓸한 입맛을 달래본다.
[연극 ‘고시원의 햄릿 공주’]
2017.05.09~05.14
소극장공유
주최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후원 : 6월민주포럼
작 : 홍승오
각색, 연출 : 양지모
출연 : 김진아 이홍재 오대성 홍승오 김국빈 김민우 이수진 임국
홍보 : 백지영
무대디자인 : 진한나
조명감독 : 김민우
무대감독 : 박예지
음악 : 음총명 이민규
영상 : 계영호
사진, 그래픽디자인 : 김솔
조연출 : 공민호

 

플티 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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