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플레이투스테이지/방송 인터뷰 기사

공연작품의 접착제 같은 존재, 소품디자이너 박현이

공연 소품을 디자인과 제작하는 박현이 디자이너를 만났다.


 

 

                     플스 102회 게스트. 소품디자이너 박현이

 

플스 102회 방송 전체듣기

 

 

 

 

Q. 소품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대표적인 이력은?

ㄴ 어머니께서 공연을 좋아하셨고 외갓집이 대학로여서 어릴 때부터 공연을 많이 접했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도 연극반 활동을 하신 분이었다. 이래저래 공연과 인연이 좀 많았던 것 같다. 전공이 공예미술인데 어떻게 하면 공연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대학교 때는 무작정 공연을 많이 보면 기회가 생길 줄 알았고 또 누군가는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해서 그것도 해봤다.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겠다 마음먹고 장치제작회사인 ‘종합무대’에 들어가 여러 제작 일을 배웠다. 그 뒤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국립극장 소품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소품제작을 배우게 됐다.

이후 2013년 남산예술센터에서 했던 ‘농담’이라는 작품에서 내 이름을 걸고 본격적인 디자인과 제작을 시작했다. 극단 아리랑의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극단 두의 ‘떠도는 땅’, 떼아뜨르 봄날의 ‘이강백의 심청’ ‘해피투게더’ 등이 대표적이다. 연극뿐만 아니라 무용이나 거리극도 한다.


 

 

Q. 소품의 영역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는지?

ㄴ 우선 연습용과 실제 공연용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연습 소품을 배우가 준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맡는다. 연습 소품은 실제 소품과 똑같이 준비하기보단 단순한 막대기나 천같이 다소 불명확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쓰임새가 다양해지고 배우들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좀 더 새롭고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와서 실제 소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상상이 더해지는 것이다.

칼싸움하는 장면에서 꼭 칼을 들고 싸우지 않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연습용과 공연 소품을 분류하고 공연용 소품에서는 무대에 붙박이로 장식되어있는 것과 직접 사용해서 배우의 움직임을 돕는 것, 그리고 매회 먹거나 사용해서 없애는 소모품. 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소품 작업


Q. 소품 제작할 때 주로 사용하는 재료를 소개해달라.

ㄴ 무대장치를 만드는 재료는 단단해야 하지만 소품은 그것보다 부드럽고 유연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마다 선호하는 재료가 다르다. 주로 천이나 종이, 스티로폼, 나무 등을 사용하는데 소재가 아주 많다. 또 조소에 이용하는 재료와 작화에 어울리는 재료가 다르며 종이나 천처럼 섬유 관련된 재료 등도 많이 사용한다.


 

Q. 작업할 때 주로 소통하는 파트는?

ㄴ 처음에는 제작자나 연출로부터 연락이 온다.
대본을 읽고 회의에 들어가면 연출을 필두로 무대디자이너, 의상디자이너와 조율한다. 가끔 조명디자이너와 음향디자이너, 분장디자이너까지 폭넓게 협의할 때도 있다. 큰 작업을 하게 되면 무대감독이나 소품 크루들과도 얘기를 나눈다. 소품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그들에게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Q. 소품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인가? 본인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다면.

ㄴ 접착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물건과 물건 사이에 떨어져 존재하는 ‘그 무엇’. 빈틈 그 자체기도 하고 그것들을 붙여주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소품이 주체가 되는 공연은 많지 않지만, 소품이 있으면 확실히 그 공연이 달라 보인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돕는 파트라서 어떤 하나로 규정되기보단 여러 가지 형태로 움직이는 게 바로 소품 담당자인 것 같다.



▲ 박현이 소품디자이너


Q. 무대디자이너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생각은 없었나?

ㄴ 사실 무대디자이너가 소품을 만드는 일도 많이 한다. 무대 일을 배웠던 초반에는 무대디자이너를 꿈꿨고 당연히 무대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무대디자인을 해보니 너무 힘들었고 나와 맞지 않았다.
무대디자인은 일단 소통하고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소품 디자이너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보통 디자인을 하고 제작소에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하는데 그때 제작소와 소통하는 것이 힘들었고 능력 부족도 느꼈다. 제작소에서 맘에 들지 않게 만들어 왔을 때 답답함을 느끼는 것보다 내가 디자인하고 직접 만드는 것이 맘 편하다.


그리고 무대디자인은 작업하는 사이즈가 커서 공연제작자 처지에서 보면 기존에 안 해봤던 방법을 실험해보기 힘들다. 제작에 있어서 리스크를 줄이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반면 소품 디자이너는 작은 영역에서부터 내가 고민했던 것들을 조금씩 실험해보며 만들어 봐도 큰 손실이 없다. 내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보겠다고 연출에게 먼저 제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도 내가 생각했던 스타일로 슬쩍 한 가지 더 만들어 놓고 연출이 첫 번째 것이 맘에 안 든다고 하면 미리 만들어놨던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무대장치는 일상의 것을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소품은 사실적으로 만들기보다 그 소품으로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설령 무대장치처럼 재현한다 해도 접근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대는 배우들의 동선을 생각해 가면서 만들어야 하지만 소품은 오로지 그 물건을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다.


Q. 같은 작품에서 소품 디자이너와 무대디자이너가 제작해야 하는 영역에 대한 구분이 있는지.

ㄴ 고정적인 세트는 소품에 해당하기도 하고 무대디자이너가 만들어야 하는 영역일 수도 있다. 또 모자나 가방 같은 것도 의상디자이너가 만들기도 하고 내 작업이기도 하다. 공연에 따라서 이번 것은 누가 만드는 게 나을지를 논의한다. 예산상의 문제에 따르기도 한다. 특정한 파트가 제작과정에서 겪는 시간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 또한, 연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연출이나 제작자에게서 처음 들었던 제작품목보다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연습하면서 추가되는 것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잘 맞는 스태프들을 만나면 서로 도와주거나 자신의 보유품을 선뜻 제공해주기도 한다.



▲ 작업 현장에서


Q.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재료나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기성품을 사기도 할 텐데 제작과 구입의 비율은 보통 얼마 정도 되는가?

ㄴ 특정 재료를 선호한다기보다 재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연에 쓰이는 물건이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보다 사용 기간이 짧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쓰는 물건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소모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품은 특별한 디자인을 필요로 하기보단 그저 존재하는 자체가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존재를 채우는데 집중해야 한다. 소품 디자이너는 재활용을 하면서도 작품의 결을 맞춰야 하는 역할이다. 디자인의 영역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리고 배경이 외국이나 시대극일 경우는 소품을 다 제작해야 할 테지만 요즘 시대를 표현할 때는 구입을 많이 한다. 일반 용품을 사더라도 바로 쓸 수는 없고 어느 정도 손을 본다. 또 기성품을 재활용하더라도 소품이 가진 기능이나 구조에 신경 쓴다. 구입이냐 제작이냐는 비율로 단정 지을 수 없고 공연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Q. 공연이 끝나고 보관 방법에 대해.

ㄴ 주로 극단이나 제작사가 한다. 극단에서 보관하기 부담스러울 땐 나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공연을 끝내고 수명을 다한 소품은 폐기한다. 예산 때문에 소품에 대한 제작비를 극단이 구매할 수 없는 경우는 내가 가진 물건을 종종 대여하기도 한다.


Q. 대여해서 쓰거나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되긴 힘든가?

ㄴ 간혹 공공기관에서 있긴 하지만 문화가 정착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공연 쪽엔 대여문화가 약해서 간혹 영화 소품을 빌리기도 한다.


사실 소품을 모아두면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선 소품과 디자인의 영역이 분리되지 않아서 저작권에 따른 소유권 문제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이 해결된다면 소품제작에서 불필요한 예산을 절감할 것이다. 디자이너에 대한 계약서도 명확해야 소품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지만 디자인이 누구 것이라 할 것 없이 항상 비슷하게 사용되는 소품들은 재활용의 빈도가 높을 수 있다. 그렇다면 소품 디자이너의 감각도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소품 디자이너들이 만드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쏟기 때문에 작품에 어울리는 소품이 무얼까 고민하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활용 빈도가 높으면 작품에 어울리는 것들을 쉽게 더 많이 가져다 쓸 수 있다.


Q. 소품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ㄴ 사실 이 분야에 입문하는 것을 자신 있게 권하기가 어렵다. 공연 대본을 읽고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무척 재밌는 일이지만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엔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 많아 꼭 소품 디자이너가 제작하지 않더라도 무대디자이너가 소품을 만들기도 하고 의상디자이너가 만든 소품도 재밌다.

극단에서 배우들이 만든 소품도 참신하다. 그래서 소품 디자이너가 모든 소품을 다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나조차도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공연에서 사실주의 극보다 오브제의 쓰임이 높은 극이 많다면 소품 디자이너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나로서는 소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작품에 대해 같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