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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연극] '일루전'- 지극히 연극적 연극 'illusions'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공간의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한 장으로 합성한 사진들이 올라오곤 한다.
멀게는 백여 년에서 가깝게는 삼사십 년을 넘나들며 편집해 놓은 사진들이 그것이다.
하나의 공간과 그곳을 거쳐 간 오래전 사람들의 모습은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임에도 결코 만져 볼 수 없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허상임을 깨닫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처럼 그곳엔 과거의 우리가 있었고 그곳을 즐기고 느꼈으며 향유했었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그런 어디엔가 있다.

 

 Notre Dame, 1944년과 지금

[작가 이반 비리파예프]
이 연극은 러시아 출신의 극작가 겸 연출가 이반 비리파예프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의 '사고'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를 부연한 설명에 따르면 그의 시선은 현대 러시아의 병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마약, 알코올 남용, 폭력, 청소년 매춘의 테마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1974년 러시아 이르쿠츠크 출생인 그는 청년 시절 1991년 소비에트연합의 붕괴를 겪었으며 대공황과 경제적 불평등, 탈식민주의화로 인한 문화의 절망과 혼돈을 그의 사고를 이루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2017년 한국에서 연출된 그의 희곡 작품인 '제2의 창세기'의 작품설명에 따르면 '구원, 자아분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뤘으며, 이번 연극인 'illusion'의 경우 신서사극 형식을 취했다고 하니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의 특징인 '사실주의, 이중적 자아, 구원'의 사유와 안톤 체호프의 사실주의적 서사에게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도 유추해 볼 수도 있겠다.
그가 '인간과 그 관계의 농밀함'을 섬세히 다룰 수 있는 이유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작가 이반 비리파예프

 

[시놉시스]
무대에 등장한 4명의 배우.
서구 시민사회의 전형적인 인물인 이들은 결혼한 두 커플, 우정으로 일생을 산 '알버트'와 '마가렛' 그리고 '데니'와 '산드라'다.
각각 여든 살이 넘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들은 다른 커플의 상대를 사랑했노라고 고백한다. 고백으로 인한 혼란 덕분에 과거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과 사랑이 실제였는지 아니면 환상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연극 illusion]
연극의 제목이 illusion이다.
뭐 지식인으로서 이 정도 단어쯤은 다들 아실 테지만 연극의 제목인 만큼 이 단어를 좀 연구해 보자.
illusion은 '환영, 착각, 오해' 등의 뜻으로 번역되는데 어원을 살펴보면 두 가지 정도로 분석되어 질 수 있다
첫 번째는 ill (bad) + usion (vision) , 즉 '대상을 잘 못 보거나 다르게 인식했다'고 보는 해석이고
두 번째는 il(in) + lus(play 또는 shine) + ion(명사형 접미사) , '내면에서 형성되는 무언가'로 해석할 수 있겠다.
뭐 둘 다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해석들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
연극 'illusion'은 표면적으로는 두 부부의 엇갈린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거꾸로 뒤집어 보면 스스로 정의 내리지 못함의 불완전성과 사랑을 명제화 하려는 본질적 존속 성에 대해 갈구하고 갈망함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연극 [일루전] 연습사진


[연극 속으로]
연극은 50년이 넘는 시간과 공간을 다루고 있다.
무대는 그 시공간이 혼재되어 여기저기 뒤틀리며 뒤섞여 구성되었다.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자신과 타인의 경험과 생각을 나열하거나 넘나든다.
파티하는 거실이나 서재, 낙엽 가득한 데크, 하늘, 바다는 더는 물리적 경계를 이루지 못한다.
무대디자인과 네러이션 연출기법은 수십 년을 뛰어넘는 시공간 속 서사를 어쩌면 주인공들의 한낱 illusion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연출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유추해 볼 수 있겠고, 관객의 상상력을 최고점으로 극대화하는 지극히 연극적 연극의 의도적 연출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인간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연극의 내용도 굉장히 재밌으며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정의에 대해서도 사색해 볼 기회를 주는 연극이라 생각된다.
이 가을 사랑하는 사이, 사랑을 고민하는 사이, 사랑해보고 싶은 사이의 관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연극 [일루전] 포스터

출연 이동근 송영학 곽은주 노준영
작 이반 비리파예프
번역 안정민
연출 남상식
조연출 이민규
무대 이윤수
무대감독 이산웅 김민지 제예은
오퍼 신예은 강도원
음악감독 이유정
동작 양승희
노래 이동근
조명 조인곤
기획 구효진 최정인
홍보 티위스컴퍼니
제작 퍼퍼먼스 온


* 플티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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