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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후산부,동구씨]후산부, 동구씨 리뷰

조명이 켜지고, 무대 위 새까만 광부들은 허상의 삽, 곡괭이 따위를 들고 석탄을 캐고 나른다. 들리는 소리에 맞추어 각 잡아 움직이는 모습은 기계적이면서 (산업)전사답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이 아니라 무대 구석에서 북, 꽹과리, 징 등을 사용해서 분위기를 끌어가고, 중간중간 88올림픽 소식을 전달하는 아나운서 역할을 한다. (핑키와 그랑죠에 나왔던 이현주 배우가 음향 담당하고 있었다. 괜히 반가움...) 볼거리 덕분에 눈알 이리저리 굴리느라 참 바빴다. 아무튼, 무대 위 네 명의 광부들은 붕괴사고로 고립되지만 다행히 산소 공급에 문제가 없고 어느 정도 먹을 것도 있으니 서로를 의지하며 희희낙락 구조를 기다린다.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전으로 전달받은 서울에서 온 높은 분들이 애쓰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 때문이었다.
광부들은 불을 밝힌 철모를 무대 위에 두고 2층으로 올라가 높으신 분들을 연기한다. 그들은 고개만 빼꼼 내밀며 앞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 대책회의를 하는 동안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진척되는 것은 없다. 여전히 광부들은 갇혀 있다. 무대 위 철모 불빛이 하나 사라졌다. 광부병으로 의심되는 손규봉이 죽었다. 아래에서는 죽음에 분노하며 언제 꺼내줄 것인지 두려워하고, 입 하나라도 줄어 그래도 다행이다, 동료가 죽었다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오가며 생의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을 보여주고 위에서는 88올림픽이 끝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시선을 겁내며 책임질 사람을 정하는 모략이 진행된다. 소방대장에게 모든 걸 떠안기며 진행된 구조는 결국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구는 기자회견을 한다.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으로서 높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이번 사고는 광부의 실수에서 비롯되고 죽음마저 자신들이 구조를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움직인 탓이라 말한다. - 생전에 광부들이 다이나마이트 뇌관을 잘못 건드려 붕괴됐다는 그 말과 같다. 결국 또 반복됐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사람들은 진실을 모른다.
세 명의 광부와 그 옆에 동구가 서서 옛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 극에서 제일 좋았던(슬펐던) 장면인데, 동구가 희락탄광에 처음 오던 때를 보여준다. 광부들은 막걸리 한 잔씩 하며 일이 서툴고 미숙한 사람을 후산부라 부른다며 후산부 동구를 반기고, 인생이 막장이라 막장까지 왔나 하면서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옛 모습으로 보이는 세 명과 다르게 옆에 서있는 동구의 모습은 울음을 참고 말을 하는 현재의 모습이다. 이 게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꼭 제를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생각이 들게 하면서 울컥했다.
뭘 보면서 울컥하는 일이 참 없는데, 세월호가 떠오르면서 후산부, 동구씨는 허구가 아니라 반복되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세월호를 앞에 내거는 공연보다도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면서 괜찮다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술을 풀어버렸다.
전사의 최후가 참... 공연의 그림자가 참 짙다.


*플티 리뷰단 1기 김솔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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