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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지상 최후의 농담]어차피 다가올...그러나 최대한 망각하고 싶은 삶의 마지막

 

 

'숙제를 안했왔는데 숙제검사를 기다리는 기분'
극 중 어떤 배우의 이 대사가 연극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하다.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갇힌 병사들
그들은 십분 간격으로 총살된다.
자신의 죽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지만 불가항력이다.
기왕에 죽을거 재미난 농담을 하다가 죽자는 제안과 그것을 수긍하는 포로들

연극 '지상최후의 농담'(오세혁 작, 문삼화 연출)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것이 전쟁터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인 듯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상황인 것이다.
작가는 이를 부조리한 표현으로 역설한다.

죽기살기로 발버둥을 치던 어떻든 결국 삶은 매 한가지일 뿐.
우리는 죽음이 아주 멀리있는 것처럼 느끼고 살아가지만
어느 샌가 코앞에 다가온 현실이 될 수 있다.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기위해 의미있는 노력하는게 아니라
그저 목숨을 유지하는데만도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일궈낸 사람들도 나중엔 어린애 장난과도 같은
세상살이였다는 것을 알고있다.


마지막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곁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삶이 그렇하듯이

지상최후의 농담은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몸으로 쓴 희곡이란게 느낌이 들었다.
굵은 사건이나 복잡한 갈등도 없다.
그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대끼면서 나오는
삶의 파편들이 뒤섞여 만들어 진 대사 같다.


또 삶의 극단에 서봐야 무심결에 툭 뱉어도
거짓이 아닌 느낌의 대사를 만들 수 있다.


희곡은 머리로 쓰지 않고 몸으로 써야만 한다.
비록 머리로 생각하더라도 체험으로 일구어진 몸의 진액에서 뿜어 나오는 언어라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농담을 할 수 있다.
지상최후까지 가본 것 같은 농담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숙제를 하지 못한 채 삶의 마지막을 기다린다.
사실 어떤 숙제였는지 조차 몰랐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농담도 쉽게 할 수 없다.


연극을 보며 내가 마지막으로 던질 농담은 과연 무엇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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