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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산울림 고전극장] 아이아스의 죽음을 조명하는 <아이,아이,아이>

'그리스 고전, 연극으로 읽다' 는 말처럼 고전을 연극으로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에게도 고전은 예전 중학교 때 수행평가로 꾸역꾸역 읽었던 것들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살면서 내 자의로 그리스 고전을 들여다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산울림고전을 택한 것도 텍스트로 읽었던 고전들을 연극이라는 다른 매체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전은 뭔사 나에게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것이지만 쉽사리 읽지는 못했던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공연 시작 전 더 걱정이 되었다. 내용도 단편적으로만 아는 데다 그나마도 잘 기억나지 않아서 공연 내내 지루해하다가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팜플렛에 있는 공연 설명에는 트로이 전쟁을 성공으로 이끈 아이아스가 돌연 자살을 택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아스의 심리상태에 집중해서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극을 보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누가 가질지 토론하는 자리가 펼쳐진다. 무구를 요청한 아이아스 앞에 오딧세우스가 나타나 자신이 무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딧세우스는 지략이 발달한 인물로,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술수를 쓰기도 했고)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게 된다. 여기서 나는 아이아스의 편에 서서 연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딧세우스 쪽으로 좀 더 기울었던 것 같다. 실제 연설장처럼 흘러가는 분위기가 좋았다. 소극장이 반원형이라 진짜 그리스에 온 것 같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가멤논은 극장의 관객이자 연설장의 청중에게 소유권에 대한 투표를 하게 하는데, 나누어 준 용지에는 오딧세우스라고 이미 표기가 되어 있었다. 뭔가 현실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렇게 전쟁에 큰 공을 세우고도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빼앗긴 아이아스는 절망하다 못해 정신을 놓게 된다. 미쳐버린 아이아스는 오딧세우스와 아가멤논으로 착각하고 가축들을 무참히 도살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지만 아이아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헥토르의 칼로 자살하게 된다. 아이아스의 입장에 서서 그의 마음을 생각하며 보려 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조금 모호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가치를 갖는지 조금 더 확실히 알았다면 이를 상실한 아이아스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추측해보자면, 아이아스는 무구라는 물건을 못 갖게 된 것보다는 자신이 전쟁영웅임을 완벽히 인정받지 못했기에 그에 대해 좌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아스의 자살 장면은 극 중에서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이기도 한데, 그의 죽음과 동시에 축포가 터진다. 축포 속에서 맞이하는 죽음이다. 그 축포가 마치 아이아스가 뿜어내는 피같아서 더욱 인상깊었다.

고전을 각색한 작품에 대해 평을 남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관객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고전에 대한 무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원래는 이런 거야. 원작에서 이렇기 때문이야. 라고 말해버리면 관객은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고전에 대해 모르는 무지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말을 아끼게 된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너무 친절하게 원작을 설명하게 되면 극이 늘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쳐내면 원작을 모르는 관객의 이해도가 떨어진다. 그 중간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이 극은 그것을 잘 한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극이 될 것 같다.





플레이티켓 리뷰단 1기 김은빈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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