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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 이야기

연극 <오래된 편지> 작가의 글

프로그램북에 쓰지 않았던 작가의 글을 써본다.
교육자이자 아동문학 평론가인 이오덕과 동화작가 권정생의 30년 편지우정을 그린 연극 <오래된 편지>

이 연극을 이야기 하자면 내가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권정생작가를 알게 해준 건 다름아닌 '몽실언니'
몽실언니 책읽기를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당시 나의 수준엔 동화와 일반소설의 딱 중간정도의 적당한 책이었던 것 같다.

 

 

 

몽실언니는 이후 1990년에 MBC드라마로 크게 히트 쳤다.
어린 동생들이 주인공 몽실이에게 보채며 하는 '개떡 줘'라는 대사는 학교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한참흘러 성인이 되자 강아지똥이라는 어린이 연극이 인기를 끌고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란다.
둘다 권정생작가의 대표작.
당시 선생님의 실제 나이에 대한 감은 없었다. 그랬기에 작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낯설었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작가였던가? (1937~2007)


 

이번 공연을 하며 중학교때 샀던 그 책을 다시 찾아보았다.

또 그 이후의 판본을 구입해 다시 읽어봤다.




이오덕을 알게 된 건 더 한참이 지나서였다.(1925~2003)
내가 작가 유시민을 좋아해서 그의 책을 즐겨 봤는데 특히 글쓰기를 이야기 할 때
 유작가가 자주 거론하던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오덕선생의 책을 조금씩 곁눈질 하고 있을 무렵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양철북 출판사의 책 광고를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다.

 

"어머 이오덕과 권정생. 여러분들이 서로 아는 사이?"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책 표지 이미지

 

이렇게 말하면 실례도 이만저만한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내중심의 사고에선 그렇다.

한 두번도 아니고 한 두달도 아니고 일 이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30년동안이나 편지를 주고받으셨단다.
1973년 처음만나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2003년까지 말이다.
게다가 처음 두분이 만난건 이오덕 선생님 49세 권정생선생님 37세.


일직교회 앞에서 이오덕과 권정생

 

1975년 시상식장에서

 

두 분은 띠동갑의 차이.
이오덕선생님은 권정생작가를 평생 동생처럼 낮춰부르지 않았다.
그냥 이 사실만 들어도 뭔가 거대한 울림이 있다.

 

 
                권정생과 뺑덕이(개)

 

 

 이오덕

 

선생님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는 다름아닌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소극장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줄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들은 얄팍한 두뇌가 아닌 온몸으로 살았다.
그리고 우정을 뛰어넘어 삶의 동지이기도 했다.


빌뱅이 언덕 집 앞에서 권정생

 



편지글을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순간
다른 접근 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사람들을 만나고 자문을 구하는 길 밖에는...

 

 

 
양철북출판사, 어린이문화연대, 백창우와 굴렁쇠아이들, 이오덕학교,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결국 어설픈 초고가 2년만에 나왔고
새로생겨난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됐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연까지...

 

 

 

 
편지글은 연극으로 만들기에 서정성은 짙으나
갈등의 요소가 없다.
30년의 세월을 한 시간 반의 무대에 응축하기가 쉽지 않다.
두 사람은 한공간에서 살면서 같은 프로젝트를 도모했던것이 아니기에 긴 세월에 비해 현실의 부딪힘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편지를 주고 받았겠지...

 


기다림, 그리움, 외로움 이런정서들은 연극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관객들에게 자칫 지루함을 줄 수 있다.
이오덕 권정생 빼곤 모든 요소들이 연극을 만들기엔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공연사진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들이 온몸으로 살아온 것을 소박하게 표현한 편지와 일기, 산문의 필력에 의지하는 수 밖에...

책 한권읽고 연극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제작하는 동안 차츰 현실화돼 가면서 오히려 많은 상실감이 느껴졌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그럴까?'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과 공연제작이라는 모두가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오덕과 권정생 선생께 묻고 싶었다.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왜 이렇게 됐죠?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짓 한다고, 우리 얘기를 뭐하러 하느냐고..."


맞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또 다시 생각하니 살면서 그다지 의미있는 일을 한적도 없다.
거의 대부분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나마 이 연극을 만드는게 내가 했던 일 가운데서 가장 덜 쓸데없는 짓인것 같다.
씁쓸한 위안이 된다.

난 특정위인이 대중들에게 우상화되는 것을 몹시 경계한다.
그 우상화작업 속엔 인물의 정신이나 삶의 본질은 사라지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 무리가 권력화, 세력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인은 단지 상품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런데 이오덕과 권정생은 달랐다.
아무리 우상화하려해도 그들이 몸부림 치며 살았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우러르기보단 서글픈 연민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연극 <오래된 편지>는 대학로에 수없이 명멸하는 연극들중에 하나가 됐고
1천명에도 채 못미치는 관객들만이 기억하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이오덕과 권정생을 알게 된 사람들이 조금더 늘었다.
쓸데없이 만든 연극의 조그만 성과다.
앞으로 조금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리 알려도 우둔한 동상이 되어버릴 분들이 아니란 걸 알기에...

권정생선생님 살던 안동 빌뱅이 언덕집에서 헌화하는 배우

 

일직교회 종탑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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