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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당대 일본의 최고 지식인이었습니다.

100년도 더 된 옛날에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나와서 영국에 유학을 다녀왔을 정도니까요.

영국에 유학을 갔을 당시가 1900년이니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평가 받았는지는

짐작이 가실 겁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교단에 섰는데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겪었다고 합니다.

가끔 예술가들이나 천재들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자해,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슷한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쓰메 소세키같이 우매한 시절의 지식인은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은 머릿속의 지식 넘쳐났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자각하는 자신의 인식과 사회적 통념과의 충돌이었을 겁니다. 이건 순전히 저의 추측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결국 이런 괴로움을 지인에게 털어놓았고 지인은 소세키에게 글을 한번 써보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괴로움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데

아마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근본을 발견해가고 소설이기에 허락된 문장의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화자가 고양이 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가 고등학교 교사의 집으로 들어와 살면서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일들을 목격하여 서술한 것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이름 없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주위의 인간들을 포함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사회적 지위 때문에 쉽게 벗을 수 없었던 자신의 가면(페르소나) 속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그려본 것이죠.

그것은 동물보다 낫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아주 허접한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여느 의인화 소설처럼 고양이와 인간을 ‘선’과 ‘악’으로 이분화 시키진 않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흔히 일본근대문학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렇게 고전소설의 전형성을 탈피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년에 걸쳐 인간들을 지켜본 고양이는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해 할 것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고양이가 자살을 했으니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이 소설은

100년 후 한국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집니다.

 

제작사는 '여행자'라는 극단입니다.

 

 

저는 소설을 읽은 뒤라 고양이를 의인화 하는 표현방법이 무대에서 과연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것이 소설을 연극으로 바꿨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이니까요.

네명의 배우가 고양이 역과 소설의 인물들을 연기했습니다.

고양이를 표현한 방법에 대해선 기대가 너무 컷 던 탓인지 무릎을 탁 칠만한 기발한 점을 느끼진 못했지만 장면을 이어가는 극적인 리듬감이나 보통의 연극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음악과 배우들의 대사의 싱크를 적절하게 맞춘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학이던 연극이던 독특한 예술적 가치로 사회적 통념과 맞서야하는 것은

창작자들의 변함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들도 그러한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식과 현실의 괴리감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며 저항하고 있으니까요.

 

헌데 그 괴리감은 개인이 자초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 혹은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고양이처럼 인간세상에서 더는 기댈 것이 없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장기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소설로 풀었던 것처럼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솔루션은 특정 소수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방법론이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언가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인식과 현실의 닿을 수 없는 커다란 차이 때문이라는 것부터 자각해야합니다.

 

예술 창작자들이 지금까지 동물의 의인화 된 작품을 발표했던 것은 남모를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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