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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갑출씨의 어영부영 책읽기

전(傳)을 범하다

전을 범하다.

전(傳)은 우리가 배운 고전(古典)일 것입니다.

이것은 홍길동전, 심청전, 춘향전 같이 옛부터 전해지는 설화나 소설을 말합니다.

 

책의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호기심이 갑니다.

 

우선‘ 범하다’라는 단어를 네어버에서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오는군요.

1 . 법률, 도덕, 규칙 따위를 어기다.

2 . 잘못을 저지르다.

3 .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나 지역 따위를 넘어 들어가다.

4 . 권리나 인격, 위신 따위를 해치거나 떨어뜨리다.

5 . 여자의 정조를 빼앗다.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범하다’의 의미는 3번 또는 4번이라 예상해봅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면 3번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넘어선 안될 경계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작가의 프롤로그에서 작의(作意)를 발췌해봅니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박제된 고전을 위한 하이킥입니다. 이 또한 도발적이네요.

고전소설의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 논리를 따르자면, 기껏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열여섯 살짜리 심청이 몸을 던지는 것이 선이란 것이다. 고전소설에서 도덕에 대한 이해는 그토록 얄팍하단 말인가? 사랑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춘향을 구원하는 것이 결국은 암행어사라는 판타지였다니, 이 역시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한편 한편 서로 다른 고민과 숨결을 지닌 그 많은 고전소설들에 권선징악이라는 ‘계몽의 스티커’를 붙여버렸던 것은 창피했던 봉건을 뛰어넘어 황급히 근대로 가고자 했던 우리사회의 치열한 자기갱신의 부산물일지도 모르겠다. (사이) 우리가 선 곳이 결승점이 아니라 출발점이었음을 깨달았으니 이제 ‘다시 읽기’를 시도해할 차례다.“

제목과 프롤로그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또는 잘 접하지 못했던 고전들을 한데 묶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본래의 의도가 왜곡되어 있는 것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책입니다.

고전의 주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니 저도 순간 차원을 훅 뛰어넘은 듯 비약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장화홍련전, 심청전, 홍길동전, 춘향전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도 있고

지귀설화, 김현감호, 황새결송 등 평소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들도 소개합니다.

총13편의 고전을 해석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전을 범하다.’

 

제목처럼 기존의 고정관념을 범한 것은 맞지만

결국 전을 바로 잡아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의 프롤로그처럼 공교육과 기득권이 만든 획일화 된 교육은 전을 만들고 전해왔던 우리의 조상들을 단편적인 인물로 해석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이세상에 전형적인 인물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권선징악이라는 키워드 아래 획일화된 주제를 붙임으로써 

우리의 조상들을 모두를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우매한 사람들로 규정지은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알아왔던 전(傳)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전이 아니고 결국 기득권자들이 해석한 전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전을 범한 것이 아니고

전을 가르쳐왔던 그 편협한 사고방식을 범한 것입니다.

다음은 책의 대목입니다.

도술을 부리며 힘없는 백성들을 도왔던 전우치전의 프레임을 작가가 이해한 부분입니다.

동정심이란 게 얼핏 보면 이타심 같지만 결국은 교묘한 이기심인 경우가 많다.

남을 돕는 목적이 아니라, 남을 불쌍히 여기는 나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행위가 정말로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그런 식의 도움이 그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전체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고민하지 않고,

무턱대고 ‘남을 돕고 싶은 나의 마음’만을 해소해버리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떤 고정관념을 범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