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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KooLee의 무대 그리고 사람

강아지똥 몽실언니 그리고 권정생

'강아지똥', '몽실언니그리고 권정생 (1937~2007)

 

 

과거보다 편한 삶을 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가는 시대.

그 시절 우린 사회가 발전하고 풍족해지면 모두 함께 행복하고 사이좋게 지낼 줄 알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경쟁은 일상이 되고 무엇인가를 가지고자 하는 자들의 대립은 더욱더 날카로워졌습니다.

강자는 약자에게 더욱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강해지고 약자는 더욱더 상처받고 헐벗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우린 처음부터 가치판단기준을 잘못 설정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작품 준비를 위해 만난 출판사 관계자에게서 권정생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기구한 삶을 사셨던 분이었어요.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시지만 일본과 한국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죠.

어린 시절에 겪은 차별의 시선은 권정생 선생님의 마음 한구석에 정서적인 고립을 뿌리 깊게 심어놓았어요.

폐결핵, 가난, 외로움.

평생 권 선생님을 따라다녔던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본인의 상황보다 더 선생님을 괴롭게 하는 것은 아이들과 약자들이 소외되고 그들의 상처가 외면되는 현실이었던 거 같아요.‘

 

권정생 선생의 눈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절름발이 소녀, 처마 밑 강아지 똥, 마구간의 황소, 바보, 거지.

우리 주변의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보잘것없던 것들은 전쟁과 독재 그리고 급격한 경제발전에 힘을 쏟아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주었죠.

 

약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해주는 권위자가 아닌 기꺼이 약자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로 세상을 위로하는 낮은 자로서의 권정생 선생 일생은

 (경제적)풍요 속 (정서적)빈곤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가치판단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어렴풋한 힌트를 얻어 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