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따로 또 같이/KooLee의 무대 그리고 사람

폭군으로 배운 연산, 아들 연산으로 만나다 - 문제적 인간 연산

폭군으로 배운 연산, 아들 연산으로 만나다

- 문제적 인간 연산 -

 

공신력 있는 매체 혹은 기록을 신뢰하는 것은 효율적입니다.

교과서, 연구 논문, 언론 매체 등은

개인이 각각의 자료를 검증하는데 드는 시간과 수고를 줄이고

인간 문명의 발전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보과 지식을 공유하는 행위는

인간의 다양한 습성과 만나 악용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정보는 가려지고 왜곡되고 축소됩니다.

심지어 거짓으로 가공되기도 합니다.

이런 (진실 아닌)정보는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무비판적이고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의 생각은 정보 제공자의 의도대로 조작되고 그것은 쉽사리 변하지 않고 굳어버립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해야만 하며

기존의 것에 끊임없는 의문을 제시해야 합니다.

마른 장마의 어느날 연산군을 소재로한 공연을 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최악의 폭군

피의 정치를 한 독재자

흥청(기녀의 최고 등급)의 치마 폭에서 파묻혀 세상을 망하게 할 거라는 백성의 조롱을 받은 왕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20년 전 이윤택은 색다른 관점으로 연산군을 바라봅니다.

 

'조선왕조실록(연산군일기)의 기록은 객관적으로 집필되었는가?'

 

모든 신뢰가 무너졌던 시대

  그 시대 기록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상상 

'문제적 인간 연산'

 

- 연산군 일기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기억에 없는 모정을 그리워하지만 그러한 그리움을 억압받은 아들,

드넓은 궁궐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어 고립되어 두려워하고 외로했던 남자,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시인이자 무당이었던 연산.

 

시간이 흘러도 영민함의 날카로움이 무뎌지지 않은 이윤택 연출은

 그 만의 화법으로 폭군 연산에게 서정성을 부여하고

한 개인의 광기에 가려진 기괴한 시대의 모습으로 피의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사실 승자의 손으로 쓰여진 역사를 교육 받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이런 접근이 불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왜 폭군의 악행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하고 면죄부를 주려하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연산군이 악인인지 폭군인지 아니면 상처받은 영혼인지는 무의미 해지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의 실체가

'이미 무비판적으로 접수하여 입력된 정보를

굳이 꺼내어 다각적인 시각으로 검토하는 수고에 대한 게으름'

이라는 자각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발의 거장이 20년 전의 희곡으로 만든 무대는 

사유하는 습관에서 멀어지고 있던 저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듯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자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내리는 빗줄기는 공기 속 먼지를 씻어 제게 맑은 풍경을 선물했습니다.

 

마치 뿌연 시선에 종종 비를 내려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라고 말하듯이...

 

p.s. '이승헌'이라는 기억에 남는 배우를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