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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KooLee의 무대 그리고 사람

엄마가 차려준 밥상 같은 공연 '호랑이 오빠 얼쑤'

대학로 이랑씨어터에서 '호랑이 오빠 얼쑤'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순이가 산골짜기를 넘던 중 호랑이를 만납니다.

순이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호랑이에게 어린시절 헤어진 오빠 얼쑤라고 속여 위기를 넘깁니다.

순이의 말에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호랑이는 순이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고

시간이 흘러 호랑이와 순이 모녀는 진짜 가족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바로 우리가 아는 전래동화 '효성깊은 호랑이'을 각색한 연극이었습니다.

 

 

2005년에 창단하여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극단 신명나게'가 만든 공연 '호랑이 오빠 얼쑤'는

각종 연극제에서의 수상 경력과 얼마 전 국립극장 공연을 통해 평단의 호평과 관객 입소문으로 지난 5월부터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공연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한국적인 색채를 기반으로 한 공연은 국악장단으로 관객(아이들)과 함께 호흡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하며 극을 진행합니다.

특히 호랑이에게 기운을 불어주는 주문 '덩덕기쿵덕 얼~쑤'는

어린 관객들이 극에 참여하게 만드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한 방법이었지만

어쩐지 어른인 저도 율동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몸도 움직이고 주변에 다른 관객들의 즐거운 분위기에 동화되었는지

어느새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표출되지 못했던 흥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흥겨움 덕분에 큰 기대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들어섰던 극장문을

미소를 머금고 홍조 띈 얼굴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무대 연출, 배우들의 연기, 의상 등 공연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보니

극단원 모두가 하나의 창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레퍼토리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공연계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 = 실패할 확률이 적은 안정적인 돈벌이'

라는 공식을 수많은 사례로 충분히 증명된 법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연하는 사람들은 점차 아동극을 그저 공연으로 돈을 버는 손쉬운 수단으로 인식하였고

이는 결국 아동극의 수준을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날 만난 '극단 신명나게'의 공연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은

더욱더 무게감 있는 감동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그동안 아동극에 대한 안이한 접근법에 익숙해져있던 제자신을 되돌아 보게 했습니다.

 

 

엄마는 매일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아이들의 식단을 준비합니다.

본인은 인스턴트 라면을 먹더라도

아이들이 먹을 반찬은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져 고른 재료로 만들어 상에 올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언제나 믿고 먹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호랑이 오빠 얼쑤'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 같은 공연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런 믿을 수 있는 공연 단체들이 만드는

진정성 있는 공연이 많아져

지금 어린 관객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잘 차려진 공연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여 다시 극장을 찾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