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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KooLee의 무대 그리고 사람

품격있는 공연계를 꿈꾸다

이 시대는 다양한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기적인 흐름은 여러 가지 가치관들과 이해관계를 끊임없이 얽히고 충돌하게 만들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눈앞의 이익만을 따르는 이는 철학을 잃고 부유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지난 과거에 집착해 시대를 읽지 못한 자는 도태될 것입니다.

결국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확신에 차 실천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절벽에 서라고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연계 특히 대학로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가항력적인 국가적 재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채된 경제 상황을 견디기 위해.

수많은 상황을 맞이하여 살아남기 위해 힘겹게 싸워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이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구성원끼리 서로를 헐뜯고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극장과 싸워야하는 공연팀의 하소연,

본래 목적을 잃은 채 표류되는 협회와 공연인 간의 논쟁,

예술극과 상업극으로 구분하여 서로를 외면하는 공연단체들.

이런 모든 관계들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면 짜증과 울화로 다가오는 것들도 있습니다.

 

 

바로 비상식적인 행위로 대학로 물을 흐리는 호객꾼들.

경쟁 공연의 관객을 낚아채며 공연시장의 격을 떨어뜨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없던 정의감까지 생겨 하나하나 잡고 따지고 싶어집니다.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호객행위로 관객몰이 하는 집단의 공연을 본 사람으로서 부디 연극을 처음 보는 관객이 그 연극을 관람함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현대는 시장의 울타리와 경쟁대상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와 휴대폰을 만들던 회사가

스마트 폰 시장에서 만나 총성없는 전쟁을 하고 있으며

한 나라의 두 기업이 타국에서 타국민을 대상으로 경쟁을 하기도 하며

석유회사가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자동차 특허권을 사들이는 세상입니다.

이 모든 경쟁은 결국 본인이 속한 시장의 확장과 주도권을 이끌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공연계는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옆 사람의 파이를 빼앗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관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이에 공연시장은 아무도 모르게 다른 시장에 잠식될 것입니다.

소모적인 견제보다는 시장자체의 경쟁력을 높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습니다.

공연계가 배고픈 돼지가 될까 두렵습니다.

  품격있는 경쟁으로 상생하는 공연계가 되기 위해 저부터 노력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