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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류둥의 악흥의순간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는 날

 

 

Requiem(레퀴엠).

레퀴엠은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이며 라틴어로는 '안식'을 뜻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음악들 중에 레퀴엠을 굳이 찾아들을 이유나 기회가 있는 걸까요?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 를 보고 나면 레퀴엠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이전과 또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천재음악가, 천재작곡가 모차르트는 부유하게 살지도, 많은 것을 누리며 살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빚에 쪼들리며 쫓기듯 곡을 써야 했고, 연주를 해야했으며 결국은 안타깝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또한 그러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가  파격적인 금액을 조건으로 정체불명의 백작으로부터 의뢰받은 레퀴엠 작업은, 다른 작품을 먼저 쓰는 데 밀려서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은 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쓰는 그 곡이 점차 모차르트를 더욱 쇠약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곡을 써내려갑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에서 모차르트가 기력이 너무나 쇠하여 살리에리의 도움을 받아 작곡을

이어나가는 모습과 그 과정이 저에게는 잊지못할 장면으로 남았답니다.

사실 그 외에도 몇 장면이 더 있는데요, 모차르트의 특정 곡들을 들을 때면 항상 그 장면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아래 영상은 모차르트가 레퀴엠 중 "콘푸타티스(악한 자들이 혼란스러울 때)"를 작곡하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샘하면서도 흠모하는 작곡가 살리에리의 도움으로 곡을 쓰게 되는데요, 실제로는 제자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온 힘을 다해서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냅니다.
마치 이미 존재하는 악보를 그대로 암보해서 뱉어내는 것처럼, 받아적는 살리에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설명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두 천재 뮤지션의 콜라보레이션 현장을 목격하는
 느낌이 들게끔 합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그 악보가 보이고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효과를 경험하게 되기도 하지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라크리모사(눈물의 날)"을 떠올리거나 익숙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모차르트가 죽음을 맞이하고 조촐한 장례식을 거쳐 비싸고 화려한 관이 아닌 초라한 관에 넣어진 채 공동묘지에 묻히는 장면과 함께
"라크리모사"가 흘러나옵니다.
성당에서도 이따금씩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진혼미사 때 하는 레퀴엠 연주인데요,
"콘푸타티스" 후에 이어지는 곡이 "라크리모사" 랍니다.
 
사실 어느 날에든 모차르트의 레퀴엠 전곡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꼭 누구를 기리거나 슬픔에 잠기는 의미가 아니라 레퀴엠 중 몇 곡을 선택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레퀴엠'이라는 곡 안에 담겨 있는 모차르트 특유의 아름다움, 한편으로는 강렬함과 슬픔이 교차되는 감정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고보면 우리들 주변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통해서 살아가는 이유와 힘을 얻는
사람들이 꽤 많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