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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류둥의 악흥의순간

처음 만나는 시인의 초상

 

 

마리나 츠베타예바 (Marina Tsvetaeva 1892~1941)

외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러시아에서는 20세기 시인 중 손에 꼽히는 여류 시인.

 

연극 작품을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이름은 마리나' 라는 그녀의 시,
"나는 마리나로서 죽을거야, 내 비통한 감정과 함께.

 무엇보다도 나는 시인으로서 죽을거야....."

 

연극도 잘 모르고, 평소에 시인에게 관심도 없고, 시도 좋아하지 않지만,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던 부분입니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는 마리나에게 피아노 연주하기를 강요했고,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자신은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났다고 늘 생각했던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시를 쓰며,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남성편력이 심했던 그녀는 현실에서는 동료 시인들,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시' 자체와 사랑을 하며 끊임없이 소통했습니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하나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편지로 교류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대적 상황의 영향으로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까지 잃게 되고, 러시아 첩보원의 심문과 협박 하에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연극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초상' 은 그녀의 작품이나 전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았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도 않으며,

익숙하지 않은 말투와 언어들로 모노드라마 같은 마리나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무대 구석 곳곳에 그림자처럼, 유령처럼 자리하고 있는 마리나의 대화 상대들은 때로는 죽은 사람처럼, 때로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인물들처럼 함께 하며 몰입도를 높여주었습니다.

연극이 끝날 무렵, 머릿 속에, 마음 속에 남은 것들은

시인으로서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그리고 시인으로서 살아야 했던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삶에 그저 고개가 끄덕여졌다는 것입니다.

 

내 엄마가 죽어갈 때도 곁을 지키지 않고 왜 시를 써야했는지,

내 딸이 나를 필요로 할 때도 왜 함께 해 주지 않고 시를 써야했는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삽입되는 음악들,

어머니의 피아노곡, 플룻으로 연주되지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의 로렐라이,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등...

 

눈물이 흐르도록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서 혼자 깊은 숨을 한번 내쉬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