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따로 또 같이/KooLee의 무대 그리고 사람

찰나를 잡기 위한 발버둥

헌책방에서 산 소설책 사이에서 꽃잎 책갈피가 떨어졌습니다.

중고서적을 읽다보면 종종 경험하게 되는 일이죠.

 

때로는 잘 눌린 나뭇잎이나 꽃잎이 끼워져 있고

때로는 감성적인 문구가 적힌 메모지가 발견됩니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책 사이에 그 것을 꽂아놓은 사람과 묘한 유대감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과거 감정의 기억을 흔적으로 남겨둔 사람과

지금 감정의 떨림을 나누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런 순간이 주는 작은 선물 때문에 전 사람 손 때 묻은 책이 좋습니다.

 

 

공연은 언제나 생성과 소멸이 공존합니다.

무대 위 순간의 이미지와 소리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사라집니다.

잔상도 없이 사라진 공연은 다시 잡을 수도 다시 꺼낼 수도 누군가와 공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공연도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 놓고 원하는 구절을 다시 펼치듯 지나간 순간을 고이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무의미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그래서 전 가끔 공연 중 몰래 사진을 찍습니다.

무대 뒤에서.

관객으로서는 누릴 수 없는 스태프만의 특권이라 여기며 혹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소외된 비참한 나에게 내가 보내는 위로의 제스처로써 사진을 찍습니다.

그 시간의 감동을 가슴 속에 새기기 위해.

 

하지만 결코 공연의 순간은 저장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감정의 찰나를 잡기 위한 발버둥의 기억만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 역시 시간이 흘러 공연의 순간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얼마 전 공연의 감동을 담아두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결국 순간의 설렘은 다시 꺼낼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또 공연을 해야겠습니다.

새로운 순간의 설렘을 위해